• 최종편집 2026-03-12(목)
 

 10km 넘어 15km에 이르자 내 몸은 한계상황에 도달하고 있었다. 종선은 지금까지 페이스가 아주 좋다고 했지만 나는 달리던 걸음을 딱 멈추고 싶었다. 팔 다리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지만 갑자기 내 몸에서 손목이 없다면 정말 힘들이지 않고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앞을 보며 달리기보다 내 손목을 보면서 달리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반복운동을 하는 내 팔을 볼 때 마다 나는 손목을 자르고 싶다는 유혹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다 내 팔목에 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우선 손목을 자를 수 없다면 왼쪽 손목에 있는 시계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손목시계가 천근보다도 더 무겁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손목시계를 벗어 한강에 던지면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 손목에서 천근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목시계를 벗어서 한강으로 던지지도 못했고, 내 손목을 자르지도 못한 채 갈등 속에서 달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40여일 후에 있을 2000년 춘천마라톤을 대비해서 종선과 한강의 서울마라톤코스(여의도에서 가양대교)를 달렸다. 나는 그날 여의도에서 종선에게 서울마라톤대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고, 오늘 우리가 달리는 곳이 서울마라톤대회 코스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종선이 춘천마라톤에 가기 전에 하프마라톤은 한 번 달려보고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을 때도 하프마라톤이 얼마나 긴 거리인지, 그리고 하프마라톤을 달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풀코스마라톤의 반이니 하프마라톤이라고 하겠구나 생각하는 정도였다. 


 종선과 여의도에서 하프마라톤을 뛰기로 하고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까지 사실 나는 한 번도 15km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10km를 달린 게 그때까지 내가 가장 긴 거리를 달린 것이었다. 하프마라톤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나는 하프마라톤을 달린다는 것에 대하여 별반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장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15km가 넘어가자 나는 이제 앞을 보지 않고 내 손목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상상을 했다. 손목 위의 주먹을 쥐고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내 손이 사라지고 없는 모습을. 두 주목이 내 손목위에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내 팔이 가벼워질 것인가? 그런데 손목을 자르려면 달리기를 멈추어야 했는데 나는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함께 달리는 종선이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지금 걸음을 멈추면 절대 완주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나는 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손목은 자르고 싶고, 달리는 걸음을 멈출 수는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어느덧 20km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종선이 나를 보며 말했다.


 “재학이형 이제 정말 다 왔어 조금만 참어.”


 나는 종선의 다 왔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직 나는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내 손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드디어 다 왔다면서 종선이 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종선을 따라 자동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무겁기만 하고 잘라버리고 싶기만 했던 손목은 사라지고 없었다.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나를 억압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머릿속에서는 강렬한 인상이 남아서 나를 붙들고 있었지만 몸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종선은 나를 보면서 대단하다며 치켜세웠다. 20km이상 연습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의도에서의 종선과 함께 한 하프마라톤은 엄 겁결에 달린 것이지만 내가 마라톤에 첫 발을 디딘 첫 마라톤이었다. 

*미쳤구나 미쳤어(마라톤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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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학 작가

 

이재학 작가는 부천시에 거주하는 시인이며 수필가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한 바 있는 활동이 왕성한 작가로 인정받는다.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작가는 지역 발전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지역 소식지인 "부천 소새울에 산다"의 발행인으로 지역의 삶을 깊이있게 전하며 지역의 공감대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작가는 수년간 마라톤에 전념하며 수십회의 하프마라톤,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고 수회의 입상 기록을 보유한 것은 물론 수준급의 풀코스 주파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본 지는 그의 마라톤과 관련된 글을 위주로 하는 그의 칼럼을 연재하며 문학 속에 드리워 진 삶의 여정을 연재하며 과거로 부터 현재에 이르는 감정의 변화를 함께 공감해 보는 과정을 동행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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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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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숙

누구에게나 처음은 늘 강렬하고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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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가슴에뫄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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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에세이(4) '손목을 자르고 싶었다(마라톤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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