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이 왔다. 이번 겨울은 무심코 밖에 방치한 음료수가 몇 년 만에 엄습한 추위에 얼어 터지고, 추위에 대비하여 숨을 쉴 수 있도록 변기의 수도꼭지를 열어 놓았음에도 실외의 화장실은 얼어서 사용할 수 없었다. 삼한사온의 나라이니 곧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싶었지만 추위가 한없이 계속되어 애를 태우게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겨울이었다. 추위 때문일까? 남도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예년에 비해 몇 배는 더 반가웠다.
봄이 어떤 계절인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중 봄은 희망을 품게 만드는 계절이다. ‘엄마가 반죽한 밀가루가 부풀었다/ 밤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밀가루는/ 아침이면 키가 자랐다’ 필자의 시 ‘봄’의 일부다. 봄은 밤에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고나면 달라지고, 또 자고나면 달라진다.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듯이 봄은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한다. 봄은 생명이라곤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무튀튀한 대지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푸른 밭으로 변신하게 만든다. 눈을 옴팡 뒤집어쓰고서도 꽃을 피우는 봄의 꽃들을 보라! 어디에 생명의 정기를 숨겨두었다 봄이면 엄마가 아버지가 생일 선물을 주듯이 우리에게 건네는지 신비하다. 드디어 남도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렸으니 우리를 힘내게 만들어줄 봄꽃의 향연이 줄줄이 펼쳐질 것이다. 매화에 이어 산수유 벚꽃 개나리 목련 진달래에 철쭉까지 KTX를 타고 달리는 봄의 향연을 상상만 해도 기쁘다. 이 기운으로 겨울동안 쌓였던 피곤과 우울함과 절망을 깨끗이 씻어내면 좋겠다.
나는 지난봄 매화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다. 목련의 고운 자태도 기억하고 있다. 벚꽃의 화사함도 기억하고 있다. 진달래의 선홍빛 추억도 기억하고 있다. 개나리의 희망도 기억하고 있다. 봄의 꽃들이 뭉게구름처럼 무리지어 피듯이 봄은 결코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작은 쌀알을 모아 놓은 것처럼 봄의 꽃들은 작지만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 은하수처럼 큰 무리를 만드는 봄을 즐기면서 우리는 여름(세상)으로 달려갈 힘을 얻는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라서 행복한 봄이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어느덧 쑥들이 앞 다투어 돋아난다.
세상은 봄으로 달려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다. 아직 겨울옷을 입고 있다. 꽃샘추위 때문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했고,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봄과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의 풍경을 보게 되었다. 통학버스 정거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인사만 할 뿐이었다.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들끼리 반갑게 장난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한 방향을 바라본 채 조용히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말 없는 그 공간이 무척 낯설게 보였다. 통학버스 정거장의 고독을 확인하고는 과거의 우리들은 어땠나를 떠올려보았다. 어른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쉼 없이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순간 겨울이 겨울로 끝나지 않고 봄여름가을로 이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래밭의 모래는 외롭다. 모래는 서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래는 비가 오면 빗물에 쓸려가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날라 간다. 봄이 되었어도 ‘이 봄이 진짜 봄인가’ 의심하는 나는 아직도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재학 작가
(20260314)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