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의 힘은 무서웠다. 비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비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가랑비가 속옷까지 적시고 온 몸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듯이 지속되는 종선의 마라톤 타령은 힘을 가지고 나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에 종선의 전화가 없으면 나는 전화기 앞에서 전화를 기다렸고, 나중에는 전화를 한번 걸어볼까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것은 오직 마라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마라톤을 하는 것은 두려웠지만 마라톤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미가 있었다.
나는 마라톤이란 어마어마한 단어의 힘에 짓눌려서 기를 펴지 못한 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종선의 한마디가 나를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종선이 말했다.
“재학이형 우리 산에 가면 항상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형 아니야. 산에 가면 늘 형의 엉덩이만 보고 따라가던 나도 마라톤을 했는데 형이 왜 못해?”
“야 산에 가는 것 하고 마라톤하고 갔냐. 산이야 올라가면서 경치도 감상하고, 힘들면 쉬기도 하고, 아무리 많이 걸어도 몇 킬로 밖에 안 되지만 마라톤 하면 42km를 걷는 것도 아니고 쉬지 않고 달리는 건데 마라톤을 산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누가 처음부터 42km를 뛰나. 처음에는 10km도 달리고, 다음에는 21km도 달리고 하다 충분히 연습이 되고 자신감이 생기면 42km풀코스마라톤을 하는 거지.”
나는 종선의 10km, 21km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렸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마라톤은 오직 42km풀코스마라톤만 있는지 알고 있었다. 종선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10km라면 이십 오리(4km 십리)에 불과하니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저녁에 시간이 나거나 주말이면 전에는 하지 않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괜히 아무런 생각 없이 동네를 걷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을 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마라톤의 시작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감이 생긴 나는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5km쯤 떨어진 작은집을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산에 갈 때 이외에는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었고, 언감생심 작은집을 걸어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몇 날 몇 칠을 벼르다 막상 작은집을 향해 출발했지만 십리가 좀 더 되는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멀었다. 좀 가다 힘들면 쉬고, 무슨 볼거리라도 있으면 구경을 하면서 쉬엄쉬엄 작은집을 향해 갔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작은집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걸어서 작은집을 가는 게 목표였으므로 작은집을 걸어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오히려 반전은 작은집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왔다는 말에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쓸데없이 왜 걸어왔냐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힘들지 않았냐고 몇 번을 묻고 다음부터는 걸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걸어간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작은집을 걸어가는 첫걸음을 뛴 다음에는 가끔씩 작은집으로 걸어가거나 반대로 작은집에서 집으로 걸어왔다.
작은집으로 걷기가 반복되면서 작은집으로 걸어가는 방법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몇 번 작은집으로 걷기를 한 다음에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한 번도 안 쉬고 작은집까지 걸어가기였다. 한 번도 안 쉬고 작은집까지 걷기가 가능해지자 단계를 높여서 일정한 속도로 작은집까지 걸어갔다. 그 다음에는 또 단계를 높여서 좀 더 빠르게 걸어가기를 시도했다. 여기까지 가능해지자 은근히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뛰고 싶다는 마음이 온몸으로 빠르게 펴져나갔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에세이]
1부 - 마라톤을 시작하다
1-손목을 자르고 싶었다
2-미쳤구나 미쳤어
3-마라톤, 멀고 먼 길(마라톤 이야기3)
4-뛰고 싶어 하는 마음
5-여우고개를 올라가서 본 것
이재학 작가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